장막을 열고
오래 동안 내 가슴에 가두어 놓았던, 한을 풀어 헤치며 장막을 열어 본다.
나는 이름보다 돌 공장 아들이라는 애칭으로 동네에서 불렸다. 그때부터 난 석수장이가 될 것 같았다. 돌집 아들이라 보니 커다란 돌덩이 들 사이에서 자라면서 돌의 모영, 강도, 성격, 예술성을 알아갔다. 자연적으로 터득하게 되는 것 중에 나무의 결이 있는 것처럼 돌에도 결이 있다는 것을, 눈과 손의 촉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천생 난 돌 공장 아들이었다. 때로는 석수장이들의 강요와 호기심에 정으로 돌을 다듬으면서 돌의 생각도 알 수 있었다. 어느 날 열심과 정성을 다하여 작품을 만들어서, 나 스스로 감탄을 하고 있는데, 석수장이들은 나에게 쓴웃음을 보냈다.
“작품이 곰보야.”
그때 곰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적어도 놀리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내 작품이 형편없는 졸작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 눈에는 곱고 아름답게 보이지만 수십 년을 망치와 정으로 커다란 돌덩어리를 다듬어 오신 그분들의 기술과 예술성을 나는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돌 공장 사장이 되어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난 엷은 미소를 짓는다. 가소롭게도 나의 예술성에 자아도취 했던 일이 부끄러웠다. 이제는 똑같은 돌이지만, 시간과 장소에 따라 성질이 달라지고, 변한다는 것을 알며 예리한 기술과 예술을 판단하는 석수장이가 되었다. 그런 석수장이가 글쟁이가 되겠다고 하면, 그것도 사회과학소설을 쓴다고 하면, 경거망동한 행동에 문인들에게 곰보라는 놀림을 당할지 모를 일이다.
글을 쓰면서 느끼는 것은 생각이 아름다워진다는 것이다. 사고가 많아지고 넓은 마음으로 자연을 느끼며 보이지 않은 것과 공유하는 오묘한 세상을 알아 감은 진정한 행복이다. 자아도취에 빠지는 것 아닌가? 하고 의문을 제시하지만, 그냥 이대로가 좋다. 이렇게 나도 글쟁이로 변신하여 가는 것일까? 이른 미명에 글을 쓰는 것이 좋아지는 것은 글을 사랑하는 것 같다. 아니, 사랑한다.
어설프고 미완성한 사랑이지만 순수한 풋사랑이라고 봐주면 좋겠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가 열릴 것이다.
2020년 9월 작가 오 관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