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좀(Rhizome)과 절대주의 I
중국과 러시아를 세계 경제에 편입시키면 더 부유하고, 자유롭고, 더 민주적인 나라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한동안은 효과가 있을 것처럼 보였다. 베이징은 호황을 누리고, 월가는 급등하고, 물가는 하락했으며, 새로운 세계 질서는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야기는 역전되었다. 세계화가 가져온 번영은 결코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았고, 중서부 공장 도시들의 고통, 폭력적인 시위, 한때 개혁이 진행 중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의 권위주의의 심화라는 경고 신호들은 대부분 무시되었다. 노동자들이 소외되면서 포퓰리즘이 득세했고, 한때 자유 시장을 환영했던 국가들은 다시 장벽을 쌓기 시작했다. 이렇게 완벽한 세계 통합이라는 꿈이 결국 보호무역주의와 불확실성의 새로운 시대로 이어진 배경은 무역이 국가들을 결속하고 자유를 확산시킬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1997년 여름, 미국의 낙관론은 고조되고 있었다. 호황을 누리던 빌 클린턴 대통령은 덴버에서 G7 정상회의를 주최했고,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이 세계 주요 민주주의 국가들과 처음으로 함께했다. 그 상징성은 명백했다. 냉전이 종식되고 세계 시장이 확대되었으며, 자유 무역과 민주적 자본주의에 기반한 "새로운 세계 질서"가 눈앞에 다가온 듯했다. 여전히 권위주의적이지만 점점 더 자본주의화되어 가던 중국조차도 세계 클럽에 가입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고, 장쩌민 주석은 월가에서 개막 종을 울렸다. 분위기는 의기양양했다. 마치 세계가 경제 자유화라는 기치 아래 하나로 뭉쳐지는 듯했다.